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개봉 당시에도 강렬했지만, 지금 다시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 2024년을 살아가는 지금, 이 영화 속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계급 구조, 그리고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여전히 유효하고, 어쩌면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설국열차를 재관람하며 느낀 점들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재관람이 주는 감정: 처음보다 더 깊어진 불편함
처음 봤을 땐 솔직히 “참 독특한 설정의 영화네”라고 생각했어요. 기차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사회 전체를 축소해 보여준다는 발상이 신선했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반전들이 재미있었죠. 그런데 몇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보게 된 설국열차는 단순한 SF 액션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번엔 유독 '불편함'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꼬리칸 사람들의 고통, 그들이 먹는 단백질 블록의 정체, 앞칸으로 갈수록 점점 드러나는 '선진 문명'의 위선... 그 모든 것이 현재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았어요. 이 영화는 단순히 기차 안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죠.
봉준호 감독 특유의 디테일은 두 번째 감상에서 더 명확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교실 칸의 씬에서는 세뇌된 아이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윌포드 신격화 메시지를 통해 ‘교육을 통한 이념 주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죠.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계급 구조의 축소판, 한 칸씩 옮길 때마다 보이는 현실
설국열차는 단순히 영화 속 세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집니다.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갈수록 삶의 질이 달라지고, 칸마다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전제. 이게 참 무섭도록 현실적이더라고요.
기차라는 닫힌 공간 속에서 각 칸은 하나의 계급을 나타냅니다. 뒤쪽은 가난하고 억압된 계층, 앞쪽은 여유롭고 통제하는 권력층. 그런데 그 질서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설정되어 있고, 누군가가 그걸 깨려는 순간엔 엄청난 저항이 따르죠. 이 구조 자체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빈부 격차, 노동과 자본의 갈등, 정보의 불균형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주인공 커티스가 겪는 내적 갈등이 깊어집니다. ‘앞칸’으로 가는 것이 정말 해답인가? 그저 또 다른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성공이나 상승이 진짜 자유를 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틀’로 들어가는 것일 뿐인가?
설국열차가 주는 메시지: 풍자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질문들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설국열차 역시 단순한 스토리 이상의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재관람을 통해 느낀 건, 이 영화가 “바꾸자” 혹은 “혁명을 일으키자”라고 단순히 외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오히려 아주 조용히, 하지만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죠.
기차 바깥은 모두 얼어붙은 죽음의 땅이고, 살아남기 위해선 기차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야만 하는 상황. 그런데 그 공간조차 불평등하게 나뉘어 있고, 누군가는 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관리하고 통제합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우리가 진짜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이 올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기차가 탈선하고, 주인공들이 눈 덮인 대지를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한 파국이 아니라 ‘희망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깁니다. 비록 그 희망이 불확실하고 위험할 수 있지만, 변화는 늘 그렇게 시작되니까요. 기차 안에 남아 있는 것보다, 나가서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것이 더 인간답다는 메시지 같았습니다.
설국열차는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입니다. 단순한 SF 액션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와 계급,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죠.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느끼는 것이 다르다면, 그건 당신이 자랐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한 번밖에 보지 않았다면, 꼭 다시 한 번 정주행해보세요. 분명 더 많은 것이 보일 겁니다.